2월 11일, 여러분은 어떤 날로 기억하고 계신가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키스데이 등 달마다 다양한 데이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알고 있어야 할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다소 관심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역사 속 2월 11일, 바로 그날로 돌아가 봅니다.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덕수궁 후문을 시작으로 정동공원과 옛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곳에는 돌담길이 하나 있습니다. 일명 ‘고종의 길’이라 불리는 이 길에는 아주 가슴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데요.
1896년 2월 11일 새벽, 궁녀들이 타고 다니는 가마 하나가 경복궁 밖을 긴박하게 빠져나옵니다. 가마의 목적지는 바로 러시아 공사관. 그리고 그 가마에 타고 있던 인물은 바로 조선의 임금, 고종이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사건 ‘아관파천’이 시작됩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은 점차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고 내정 간섭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일본에 대한 조선의 감정이 악화되고 각지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전국이 소란해졌습니다.
고종은 이러한 일본의 간섭을 벗어나기 위해 우호적 관계에 있던 러시아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하에 수병 100명을 서울로 데려왔고,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고종은 일본의 감시를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고종이 다른 나라의 공관에 피신하여 다른 나라 군대의 보호를 받게 되자, 조선의 자주권은 심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러시아의 간섭이 더욱 심해지게 됩니다.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이 체류하고 있던 1년의 모든 정치는 러시아의 수중에 있었고, 친러 세력의 힘이 커지자 러시아는 조선의 보호국을 자처하며 주요 이권들을 탈취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파천 1년 만인 1897년 2월 20일, 환궁을 하죠. 이후 고종은 국호를 대한, 연호를 광무로 고쳐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아관파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다양한 의견으로 바라보고 있는데요.
일본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나라를 지키려 했던 고종의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주적이지 못하고 외세에 기대기만 했던 행동이라는 입장도 있다고 하네요.

[2008년 2월 11일, 숭례문이 완전히 불타다]
‘국보 제1호’ 숭례문의 소실.
태조 7년, 1398년에 창건되어 약 6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유서 깊은 문화재로, 이제는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숭례문은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 기청제, 기우제를 지내거나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던 곳입니다.
1907년부터 1908년에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고, 한국전쟁으로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까지는 해체보수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숭례문이, 2008년 설 연휴 마지막 날 화재가 발생하게 됩니다.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었던 한 노인의 방화에서 비롯된 사고로,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문화재가 소실된 점을 보자면 우리 국민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화재 사고는 발 빠른 수습과 사후 대책이 아주 중요한데요. 숭례문 화재 진압 당시 소방당국과 문화재청 간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신속히 화재를 진압하지 못해 소실로 이어지게 되었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예 사라져버린 2층과 달리 1층 누각은 전부 불탄 것에 비해 상당 부분이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건데요. 숭례문 안에 있던 문화재 역시 몇 년 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긴 덕에 무사하다는 거죠.
복구까지 1년 반~2년 정도로 예상했으나 광화문을 보수하면서 목재로 사용 가능한 정도의 국내산 소나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건축에 쓰이는 목재는 크기도 적당해야 하지만, 벌목 후 수년간 건조를 시켜야 하기 때문에 바로 조달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결국 5년 3개월의 대장정 끝에 숭례문 복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숭례문 복구 작업은 화재로 소실된 부분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거나 변형된 부분까지도 복원하여 원형을 살려냈다고 하네요.

이처럼 2월 11일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존재했던 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충격적이기도, 뼈 아픈 사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잘 기억하고 이와 같은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내용 출처
위키백과, 아관파천
나무위키, 숭례문 방화 사건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www.gettyimagesbank.com)